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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수업

[감상수업] 감상문 쓰기

감상문, 그 짜증남에 대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쓰면 독서 감상문이고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쓰면 영화 감상문입니다.

그런데 이 감상문이란 녀석은 매우 조심해야 할 존재죠.

 

 아이들에게 감상문을 강요하는 순간 책 읽기 영화 보기가 싫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도 영화와 책을 모두 좋아하지만, 제가 보고 읽는 모든 영화와 책에대해 감상문을 쓰라고 하면 짜증이 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감상 수업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좋은 영화 보여주기' 입니다.

아이들 수준에 맞는 좋은 영화는 보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아이에게 의미 있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복하게 영화 잘 보고나서는 '감상문 제출' 이라니! 짜증이 치밀어 오릅니다.

그러면서도 동아리 활동을 진행할 때면 '감상문 제출'을 강요하는 제 모습에 또 한 번 짜증이 나는군요ㅋ 평가를 해야하는데 제가 아는 '객관적이면서도 쉬운 방법'이 감상문 제출이거든요.

 

 

감상문, 알고는 가자.

 

 이렇게 짜증나는 감상문이지만, 감상문을 쓰는 방법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입니다. 영화를 수십편, 수백편 보다보면 가끔은 내 기분을 글로 표현하고 싶을 때가 생기거든요. 그리고 이왕 쓰는거 제대로 쓰면 좋죠.

 

 학교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는 느낀 점을 써보라는 질문과 요구는 많은데, 정작 그 느낀 점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감상문 쓰기에 대해 몇 글자 끄적여 볼까 합니다.

저도 어디서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냥 여기 저기서 귀동냥한 것, 그냥 혼자 느낀 것, 그냥 혼자 쓰다보니 알게 된 것이 다 입니다.

 

 

1. 분량

 

 감상문을 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

 "선생님, 몇 줄 써요?"

 

'선생님, 10줄만 쓰면 안돼요?' '원고지 10장?' '죄송합니다. 열심히 쓸게요.'

 

 

 이거 참 애애합니다.

마음대로 하라고 해버리면 그냥 두 세줄 끄적여 놓고 "다 했는대요~" 라며 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20줄 이상" 이라고 말하면 공책 위에서부터 스무 줄 세서 표시해두고 감상문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억지로 스무 줄에 꾸역꾸역 양을 채워 넣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또 19줄 채우고 20줄 째에는 한 두글자만 써 넣는 모습도 보이고요. 오죽하면 "선생님, 제목부터 20줄 이에요, 내용만 20줄 이에요?" 라는 질문이 들어올까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1:1 지도겠지요. 그런데 이건 가정이나 학원에서나 가능하지 대부분 학교에서는 불가능 합니다. 30명 내외 아이들을 1:1로 만나다보면 시간도 부족할 뿐 아니라 교사도 탈진하거든요ㅋ

 

 최선이 안된다면 차선으로 가야겠죠.

 먼저, 감상문을 쓰기 전에 감상문을 쓰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이고 깊이있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에 대한 것은 아래에서 내용을 전개하겠습니다.

 다음은 우리 귀여운 뺀질이와 귀차니즘 아이들을 중심으로 지도를 합니다. 학교 교육이란게 아이들을 '어느 정도 까지'만 끌어올리는게 목표니까요ㅋ

 그렇다고 잘 쓰는 아이들을 버릴 수는 없죠. 글을 쓰는 시간에 교사는 돌아다니며 이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칭찬해주죠. 내용과 분량을 모두 칭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분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 하지만 많이 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도 필요하다'고 평소에도 강조하거든요.

 그리고 발표시간에 발표하는 아이가 쓴 글에서 최대한 칭찬을 뽑아 냅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함께 말해줘야죠.

 

 그러다보면 글 쓰는 분량이 조금씩 많아지게 됩니다. 인간은 할 말 많은 동물이니까요 ^^

 

 

 

2. 줄거리는 쓰지 말자.

 

 감상문을 써오라고 하면 가장 흔한 패턴이 이렇습니다.

"나는 오늘 콩쥐 팥쥐를 보았다... 줄거리... 참 재미 있었다. 끝."

 

 내용 간추리기인지 느낀점 쓰기인지 헷갈리는 감상문이죠. 마지막에 참 재미있었다만 들어가면 모든게 해결되는 것 같은 감상문. 유사품으로 '다음에 또 보고 싶다', '친구에게 소개주고 싶다' 가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감상문에서 '내 생각'은 사라지고 책 내용만 남게되죠.

그래서 저는 아예 줄거리를 쓰지 말라고 합니다. 다만 내 느낌을 쓸 때 필요한 내용은 언급하는 정도로 쓸 수 있죠.

 

'처음 만난 남자를 믿는건 어리석다는 것을 느꼈다. 안나가 한스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느끼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처음에는 부러웠지만 나중에는 바보처럼 느껴졌다.' 밑줄 그은 부분이 줄거리 잠깐 언급 부분 (사진 출처: DAUM 영화)

 

 

 

잠깐~

 

 줄거리를 안 쓰면 대체 감상문에 어떤 내용으로 채워나가야 하는 걸까요?

그 내용을 교훈, 감정, 현실이라는 세 가지 단어로 제시해 보았습니다.

 

 당연하지만 이 세 가지는 딱딱 나눠지는게 아닙니다. 여기저기 뒤엉켜 있기도 합니다.

또 이 세 가지를 모두 감상문 속에 우겨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만 넣어도 되고 심지어 이 것들 외에 다른 것을 감상문 내용으로 적어도 상관 없습니다.

 

 

 

3. 교훈: 캐릭터를 중심으로

 

첫번째는 교훈입니다. 교훈이라고 하면 거부감이 느껴지는 분들도 있겠지만 다른 말로 하면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착하게 살아야 겠다' 같은 뻔한 표현이 많이 쓰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저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글을 써보게 합니다.

 

 

쿵푸팬더 2를 중심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출처: DAUM 영화)

 

 

① 나도 ㅇㅇ처럼 ~ 하고 싶다.

 긍정적인 내용이죠. 보통 영화 주인공을 모델로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포는 셴에게 계속해서 패배했다. 하지만 실패를 딛고 계속 도전했다. 나도 포처럼 실패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용기를 가져야 겠다.' 정도가 되겠죠.

 

② 나도 ㅇㅇ처럼 ~ 하지 말아야 겠다.

 부정적인 내용입니다. 보통 영화 주인공에 대비되는 인물을 보델로 하게됩니다. 타산지석 이랄까요?

예를 들면, '셴은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었다. 하지만 그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탓했다. 그리고 과거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질렀다. 나도 무엇인가를 잘못하면 다른 사람 탓을 하지 않고 반성해야 겠다' 가 있습니다.

 

③ 내가 ㅇㅇ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직접 캐릭터가 되어서 그 캐릭터가 빠진 갈등 상황에 직면해 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갑자기 우리 아빠가 나를 낳아준 친부모가 아니라고 한다면 난 어떨까? 정말 충격을 받을 것 같다. 포처럼 자연스럽게 아빠를 대할 수 있을까? 포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가 그 예 입니다.

 

 

4. 감정: 나와 대화 나누기

① 적절한 단어로 표현하기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을 다양한 단어로 표현하는 연습은 중요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웃긴 영화를 봐도 재미있다고 표현하고, 슬픈 영화를 봐도 재미있다고 표현합니다.

또 재미있다와 슬프다 두 가지로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감정은 다양합니다.

기뻤다, 슬펐다, 편안했다, 불편했다, 따뜻했다, 행복했다, 화가났다 등 여러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 표현하기 1단계는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을 적절한 단어로 표현하기 입니다.

 

네. 감정이 다섯 가지만 있는건 아니죠ㅋ (출처: DAUM 영화)

 

 

② 구체적인 장면 써보기

 이어서 2단계는 특히 어느 장면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적어보는 겁니다. 그냥 그런 감정이 들었어요 라는 것보다 구체적인 장면을 직접 써보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인사이드 아웃>(2015)을 보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면 어느 장면에서 마음이 불편했는지 써보게 하는거죠. 누군가는 '빙 봉'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불편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기쁨이가 슬픔이 주위에 원을 그리며 여기서 나오지 말라는 말을 했을 때 불편했을 수도 있습니다.

 

③ 나와 대화하기

 마지막 '나와 대화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내가 감정을 단어로 표현했고, 구체적인 장면까지 써 보았다면 마지막 단계는 그 이유를 써보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이야기를 나워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 단계까지 오게 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위에서 든 <인사이드 아웃>(2015) 예를 이어 가겠습니다.

감정: 나는 불편했다.

장면: 기쁨이가 슬픔이 주위에 원을 그리며 여기서 나오지 말라는 말을 하는 장면 등

왜:

 

 왜 불편했을까요? 어쩌면 슬픔이처럼 따돌림을 당한 경험 때문에 불편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자기 과거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들었을 수 있습니다. 자기 아팠던 과거를 끄집어 내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잘 끄집어 냅니다.

 

또 어쩌면 기쁨이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기쁨이가 한 행동은 관객들에게 저건 너무했다, 기쁨이 저러면 안돼지 같은 반응을 끌어 냅니다. 그런데 자기와 기쁨이가 너무 닮아 있다면 혹은 그렇게 느낀다면, 기쁨이가 받는 비난을 자기도 함께 받는 기분이 들겠죠. 그래서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현재 모습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들었을 수 있습니다.

 

 

5. 현실: 더 넓게 세상 바라보기

 

영화 속 이야기를 현실과 연결 짓는 작업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참 재미있었다~' 밖에 안쓰는 우리 아이에게 '자, 영화를 보고 현실과 비슷한 점을 찾아보렴. 그래서 우리 이 사회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할지 생각해 보자'고 말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현실과 연관지으려면 적어도 4학년 이상은 되야 합니다. 그리고 내용도 어렵지 않아야 하고요.

 

 현실과 연관 지어보라는 의미를 아이들에게 전달할 때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비유법이라고 있죠? 어떤 대상을 공통되는 성질을 가진 다른 대상으로 나타내는 거요(맞게 얘기 한건가요?ㅋ). 비유법이란 말이 초등학교 교육과정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이들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미 알고 있어요.

 '사과같은 내 얼굴' 이면 사과와 내 얼굴의 공통점이 있으니까 그런 거겠죠.

 '우유빛깔 김만제'면 김만제 어린이가 우유빛깔과 공통점이 있으니까 그런 거겠죠.

 

 마찬가지 입니다. 영화와 우리 현실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거에요.

 

멈블은 노래는 못 부르지만 춤실력은 최고~ (출처: DAUM 영화)

 

<해피피트>(2006)에 나오는 황제펭귄 사회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공부만 강요하는데 저기는 노래만 강요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재능이 있는데 왜 한 가지만 강요할까에 대해 고민할 수 있죠.

 

 

아. 어린 시절 충격을 주었던 영화, 나우시카 (출처: DAUM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보고 환경이나 전쟁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를 우리가 너무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시킬 수 있죠.

 

 처음부터 감상을 사회로 확장시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제를 주고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환경, 왕따, 사랑 등의 주제를 주고 영화와 현실이 어떤 부분에서 비슷한지를 찾는 연습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서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싹트게 되겠죠.

 

 

 

급한 마무리

 

감상문, 가끔은 괜찮습니다만 그래도 가능하면 쓰지 맙시다. 끝.

 

 

응? 이게 마무리야?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