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퀄 보드게임을 바란다.
저는 보드게임을 좋아합니다. 게임을하면 1등은 커녕 2등도 잘 못해 보지만 그래도 보드게임을 좋아합니다. 그 뿐 아니라 보드게임이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는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매우 훌륭한 취미 생활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내 가족, 내 친구들과 즐기는 보드게임을 넘어서 보드게임이 우리 사회 전체에 영화나 책처럼 '흔한 문화'로 뿌리내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바램을 마음 속에 꼭옥 가지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개인이 아니라 보드게임 출판사가 '이것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이것'에 대한 글입니다.
1. 우리 사회의 보드게임
2000년대 초반 우리 나라에 보드게임 열풍이 불었습니다. 보드게임방도 많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보드게임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후 그런 바람이 점차 사그러들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다시 보드게임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2000년대 초반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당시에는 보드게임이란 그저 시간 때우기용으로 간단하게 웃고 즐기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지금은 당당히 하나의 취미로 인정받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외롭게 보드게임 명맥을 지켜온 분들과 보드게임 산업 밭을 일궈온 업체 관계자 분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참 감사한 분들이죠.
그리고 한 가지 이유를 더 찾아본다면, 2000년대 초반 보드게임을 즐겼던 분들이 시간이 지나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그 당시에는 해봤자 카탄이었던 기억 (출처: 보드게임긱)
2. 어른들의 보드게임 라이프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 보드게이머들도 좋아하는 취미를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합니다. 특히 보드게임은 혼자서는 큰 재미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더 그런것 같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싶어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그래서 자식들이 어떻게하면 보드게임을 좋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훈훈한 사례들이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 심심치않게 보이곤 합니다.
3. 아이들의 보드게임 라이프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른-특히 부모에게 처음 보드게임을 배우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 기능성 보드게임이란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취미로서 보드게임이 아닌 학습으로서 보드게임을 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끼리 스스로 보드게임을 하는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듭니다. 부모가 시켜서 아이들끼리 게임을 하거나 부모 또는 교사와 보드게임을 하는 상황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직접 보드게임을 선택하고 자기 돈으로 구매하는 경우는 매우 희귀한 일이 되겠죠.
4. 보드게임 산업의 미래
정리하자면, 보드게임이란 문화를 어른들은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반면 아이들은 수동적으로 선택되어진 문화를 소비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아이가 먼저 보드게임을 하자고 조른다고 해서 능동적 문화 소비를 아이가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선택, 구매, 방법 익히기, 게임하기까지 관여해야 능동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에 '흔한 문화'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그 문화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합니다. 또래 문화가 형성되지 않으면 그 문화는 시간이 지나 결국 힘을 잃고 말죠. 그래서 안목있는 단체나 거대 자본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며 투자합니다. 한 번 몸에 벤 문화는 평생 가는 경우가 만으니까요.
이렇게보면 보드게임 산업의 미래가 아주 밝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조그마한 시장을 형성한채로 고만고만하게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리라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그래서 교육이 무서운 것.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손을 대는 것. (출처: 교육부)
5. 뿌리깊은 보드게임 문화를 위한 전제
무엇인가가 그 사회에서 주류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모바일 게임의 경우 빠른 스마트폰 보급과 특유의 중독성으로 영화, 책을 제끼고 1위 자리를 차지한 문화가 되었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 입니다. 1
오히려 보드게임은 모바일 게임과 반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리적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함께할 사람도 모아야 합니다. 게다가 잠깐 하고 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게임을 할 때는 게임에 집중해야하죠.
이런 보드게임의 특징으로 인해서 보드게임은 모바일 게임처럼 빠른 속도로 문화 주류를 형성하지 못한다는 것, 아니 오히려 문화 바깥 고리의 바깥으로 밀려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보드게임이 그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느리지만 근본적인 방법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 정도로는 부족하죠.
결국, 아이들 또래 문화로 보드게임을 정착시켜야 합니다.
야, 너 오늘 뭐해? 가볍게 보드게임이나 할까?
보드게임 산업이 지금처럼 발전 하기까지는 소수의 노력과 2000천년대 초반 보드게임을 접한 사람들이 구매력을 갖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보드게임이 지금은 몇 몇 사람만 공유하는 문화에서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지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제는 아이들을 위해 투자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단순히 어른들의 문화를 아이들에게 소개시켜 주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어른-아이 문화를 넘어 아이-아이 문화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어느 보드게임 팟캐스트 방송에서, 초등하교 저학년 이하 아이들을 위한 보드게임을 소개하며 이런 전제를 깔아놓았습니다. ‘함께하는 어른도 재미있어야 한다.’
저는 반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어른과 노는것 보다 자기들끼리 노는걸 더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어른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이들끼리 보드게임을 하는 상황을 배제한 것입니다.
6.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사게 하기 위한 전제
보드게임을 또래 문화 중 하나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보드게임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법인까요.
그럼 아이들은 왜 보드게임을 사지 않을까요?
보드게임에 대해 잘 몰라서도 있고 기회비용을 따져서 다른 걸 하기 위해서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사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비싸기 때문입니다. 비싸다보니 선뜻 손이가기 어렵죠. 대형마트에 전시된 게임만 봐도 가격이 상당합니다. 대형마트에서 아이가 게임을 사는건 일상이 아닌 ‘이벤트’에 가깝습니다. 가격이 확 내려가야 합니다.
가장 싼 할리갈리가 17,100원 (출처: 다이브 다이스)
다음은 게임 난이도에 대한 겁니다. 난이도는 쉬워야 합니다. 어느 정도냐하면, 3, 4 학년 정도 아이들이 직접 설명서를 읽고 게임을 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합니다. 또래 문화가 만들어지려면 자기들 스스로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게임. 엄마 지갑에 손대면 디지게 맞는다는 교훈은 덤. (출처: 참여연대)
세 번째 조건은 판매처에 대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동네 문방구에 보드게임이 들어가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주 가는 곳은 대형 마트가 아니라 문방구 입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들릴 수 있은 곳인 동네 문방구에 보드게임이 들어와야 합니다.
아직까지 학교 앞 문방구는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이용되는 판매처다. (출처: DAUM영화 / 미나문방구)
마지막 조건은 게임 테마와 재미에 대한 것 입니다.
일단 테마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 구미에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귀신도 나오고 탐정도 나오고 공룡이나 로보트도 나와야겠죠.
하지만 재미라는 전제를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재미 없는건 어른이든 아이든 싫어합니다.
나를 보드게임 세계로 이끌어 주었던 게임. 테마와 재미가 모두 훌륭. (출처: 보드게임 포탈)
7. 결론: 흔한 또래 문화가 되기 위한 제안
2013, 2014년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한 게임은 <유희왕> 입니다. 일단 가격이 싸 보입니다. 이게 TCG라서 한 팩 한 팩은 싸지만 마음먹고 모으면 돈이 많이 드는 게임입니다. 이걸보면 아이들 구매력이 그리 나쁘지 않음을 느낍니다.
자, 길고 긴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되었습니다. 가격은 싸야하고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테마는 아이들 수준이 맞는 게임 그리고 파는 곳은 문방구인 게임.
이런 게임은 당연히 게임 구성물의 질이 낮은 게임이 될 수밖에 없겠죠.
네, 그렇습니다. 저는 저퀄리티 게임을 바랍니다. 구성물은 조잡하고 어른들이 하기에는 너무 쉬운, 그리고 공부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보드게임 말입니다.
이런 보드게임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이던 시절, 졸리게임 시리즈가 그것 입니다. 친구는 홀수 번호를 저는 짝수 번호를 사며 게임하던 추억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들만의 보드게임 문화를 기대해봅니다.
더불어 코리아보드게임즈 등 대형 보드게임 회사에서 출판하는 저퀄리티 게임을 동네 문방구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봅니다.
졸리는 정말 대단합니다. 비록 복각판이지만 추억은 방울방울이죠.
- 그런데 웃긴건 많은 사람들이 이걸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취미생활을 적는 칸에 모바일 게임을 스스럼없이 적는 ‘어른’은 그리 많지 않을겁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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