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재미와 학습 사이
어느 날 부터인가 '학습(교육)용 보드게임'이라는 말이 생겨버렸어요. 그런데 자꾸 마음이 쓰이는 거예요. 왜일까.
'학습용 보드게임'이 보드게임 시장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도 인정하고 또 이 게임들 중에는 제법 재미있는 게임도 많아요. 그런데 자꾸 거슬리는 거예요. 왜일까.
저만해도 교육과정에 맞는 보드게임으로 수업을 하곤 하지만 자꾸 '학습용 보드게임'이란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예요. 왜일까.
곰곰이 제 마음을 들여다보니 '내 취미 생활에 왜 학습용이란 말을 붙여? 나는 노는 거라고!' 라는 생각이 발견되더라고요. 교육이 직업인데 취미까지 교육이라니, 끔찍하네요.
그리고 '학습용'이란 말로 아이들에게 집에서까지 보드게임으로 공부를 시키려는 의도도 불편하고요.
으아. 학교 끝나고 집에 왔더니 똑 학교라니. 심지어 화학. (출처: 보드게임긱)
이해는 됩니다, 놀면서 공부한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오잖아요.
그런데 놀면서 공부한다? 대부분 학습용 보드게임을 사는 학부모의 마음은 어디에 방점이 찍혀 있을까요? 아마 '논다'보다 '공부'에 더 큰 비중이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되면 이건 아이들에겐 공부로 다가올 수 있어요. 논리적으로 말하진 못해도 애들은 부모 마음과 감정을 기똥차게 알거든요.
그리고 '공부'를 위해 보드게임을 사준 학부모는 고학년이 될수록 아이들에게 더 이상 보드게임을 허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
<팬데믹>으로 나라 이름 외우기 시키면 게임 안 할거야 (출처: 보드게임긱)
에이 보드게임 하면서 소근육, 수리능력, 영어 단어, 논리력 등이 향상되면 좋지 뭐 그리 따지고 드냐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러면 아이 인생은 재미없어요. 보드게임만 그럴까요?
책도 그래요. 어릴 때부터 책을 읽혀야 독서 습관이 생기고 상식이 풍부해지고 독해 능력이 좋아지고 어쩌고저쩌고해서 공부를 잘 하게 된다고 하죠. 맞아요. 그런데 중학교 때 아이들이 책이 재미있다고 하루에 2, 3시간씩 책을 읽는다면 그냥 둘 학부모가 몇 분이나 계실까요. '야야 지금 공부해야지 무슨 책이야, 책은 커서 읽어.' 이러시지 않을까요?
보드게임도 책도 이런 관점에서 대하면 아이는 어떤 가치관을 갖게 될까요? 또 제대로 된 취미나 가질 수 있을까요?
저는 아이들의 모든 인생 프로그램이 공부에 맞춰져 있는데 반대해요.
물건을 팔기 위해 보드게임이든 책이든 뭐든 소비자의 마음에 들도록 포장하는 걸 비난하려는 게 아니에요.
노는 것을 비롯한 모든 행동을 아이의 공부, 대학, 직장에 맞추다보면 불쌍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아이들은 충분히 빡빡한 인생을 살고 있어요. 이제 아이들에게 공부가 아닌 여유를 위해 무언가를 사주 세요.
교실에서 왜 보드게임을 하느냐는 물음에 저는 논리, 협력, 학교 폭력 예방 등의 대답은 하지 않아요(이런건 '문서'에나 들어갈 단어죠). 그냥 "애들이 좋아하거든요, 재미 있어 해요."라고 말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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