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마크 오스본 감독, 2015
출처: DAUM 영화
줄거리
딸의 인생을 1분단위로 계획해서 실행하는 엄마. 그리고 딸은 엄마가 옳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느 날 종이 비행기가 소녀(딸)에게 날아든다. 거기에는 '어린왕자' 이야기가 적혀있고 그 종이를 계기로 옆 집 괴짜 할아버지를 만나게된다. 할아버지와 만나면서 소녀는 엄마가 세워놓은 계획표를 어기게 되고, 결국 그 사실이 들통나서 엄마는 소녀에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할어버지는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다. 소녀는 할아버지에게 필요한 건 '어린왕자'라고 생각하고 그를 찾으러 떠난다. 하지만 소녀가 발견한 어린왕자는 무기력하고 자신감 없는 어른이 된 채 어린 시절 기억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소녀는 어린왕자의 기억을 찾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할어버지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응응~) |
총평
재미와 교훈을 모두 잡는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원작을 액자식으로 끼어 넣어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현대에 맞게 재구성하는 영리함까지 갖춘 영화입니다. 하지만 원작 <어린왕자>가 어른을 위한 작품이듯 영화 <어린왕자>도 어른을 위한 영화였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겠지만 <어린왕자>가 가진 은유는 아무래도 어른을 위한 몫이었겠죠.
'행복한 바오밥'에서 수입/출판한 애니메이션판 보드게임 <어린왕자>. 해보고 싶은데 기회가 없네.
시간표
교육을 업으로 삼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제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엄마가 소녀를 위해 작성한 시간표 입니다.
하루 시간표가 아니라 인생 시간표다.
분단위로 친구 사귀는 날까지 정해져 있는, 그야말로 보기만해도 숨이 턱 막히는 시간표입니다.
영화를 본 후에도 자꾸 이 시간표가 머리 속에서 맴돌길래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우리 학급에 걸려있는 시간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루에 길게는 6시간 이상 학교에 머무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학교는 가혹하리만치 빡빡한 시간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월요일 1교시 수학, 2교시 국어, 3교시 체육, 4교시 과학...
물론 쉬는 시간이 있지만 그 10분은 영화에서 소녀가 사과 먹는 시간에 불과합니다. 사과를 먹던 소녀는 알람이 울리면 갑자기 사과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죠.
어린 시절 방학 시간표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제가 어릴 때만해도 방학 전에 시간표를 짜는 게 필수 활동 이었습니다. 동그란 원 안에 24시간을 그려놓고 사간표를 짰었죠. 처음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공부랑 운동시간이 많았는데 6학년이 될수록 점점 현실에 가까운 시간표를 짜게 되더군요.
일어나는 시간은 저학년 때는 6시나 7시였는데 6학년 때는 10시까지 넘어갔습니다. 또 그 때는 '자유시간'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저학년 때는 공부하다가 자유시간을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으로 잡았다가 6학년 때는 '어차피 자유시간에는 노는 것만 있는 게 아니지. 공주도 자유시간에 들어가잖아'란 생각에 밥 먹는 시간 빼고 대부분을 자유 시간으로 채웠던 기억이 납니다.
자유시간
생각해보면 자유시간이란 참 좋은 단어 같습니다. 공부를 하던 놀던 잠을 자던 자유롭게 선택하는 시간이란 뜻이니까요. 조금 좋은 말 갔다 붙이면 자기 주도적 시간 관리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에 자유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너무 빡빡한 교육과정 시간표 속에서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 말이죠.
저는 이것을 '빈 칸 교육과정'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교육 과정 속에 글씨가 써 있지 않은, 빈 칸만 있는 교육과정이 빈 칸 교육과정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공교육 안에서 빈 칸 교육과정을 당장 실행하기에는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빈 칸 교육과정을 위해서는, 교육과정 내용을 줄여야 하고 교육과정 내용을 줄이려면 아마 교과 교수들끼리 엄청 싸울 테고 그 뿐 아니라 교과 안에서도 각 분야 교수와 교사들도 굉장히 다투겠죠. 또 이 뿐인가요,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죠.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놀면 안 된다는 입장부터 선생들이 애들 가르치기 싫어서 그런다는 비난까지 다양한 의견을 모두 수렴해야겠죠. 네, 알고 있습니다.
창의성, 구글의 경우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직장이 구글google 입니다. 이 구글에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는 뉴스 기사을 보았습니다.
직원들에게 업무 시간에 업무 외 딴 짓을 20% 하라는 제도 입니다. 20%면 주5일 근무라고 했을 때 하루를 몽땅 딴 짓에 쓰라는 겁니다. 많은 뉴스기사가 이 20% 딴 짓이 구글의 창의성을 이끌어 왔다며 여러 사례를 들어 칭송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나라 기업에 적용한다고 하면? 경제가 망한다고 난리 나겠죠. 만약 이 것을 학교에 적용한다면? 학력이 하락한다고 난리 나겠죠.
칭찬은 하지만 그건 우리한테는 안된다니... 대체 이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길을 고민해야만 하는 아이들
만약 학교에서 수요일은 자유시간이라고 선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이들이 마냥 놀기만 할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적어도 뭐하고 놀지 고민한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심심하니까요. 짜여진 시간표대로만 살다 보면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길러지지 않을 겁니다.
양을 그려달라던 어린 왕자는 왜 저 상자를 보고 만족했을까요? 누군가 그려준 양 만으로는 진짜 내가 원하는 양이 될 수 없겠죠.
god라는 그룹은 <길>이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이 음악처럼 우리 아이들이 자기 길을 고민하며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뮤직비디오라서 그런지 2분 넘어야 노래가 나옵니다. 앞 부분은 저는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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