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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초속5센티미터: 당신과 나 사이

초속5센티미터

신카이 마코토 감독, 2007년



음. 신세대 천재 감독 이었군. 출처: 네이버 영화.



당신과 나 사이[각주:1]


 당신과 나는 얼마나 멀리 있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가진 가장 큰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간단한 물리 공식 하나를 소환해야만 했다.


S = V × T

거리 = 속력 × 시간


거리(S)는 상대방에 대한 내 감정의 깊이를 뜻한다.

속력(V)은 얼마나 빨리 사랑에 빠져드는가, 즉 V값이 크면 정렬적인 사랑, V값이 작으면 조금씩 젖어드는 사랑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영화 제목 <초속5센티미터>는 이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시간(T)은 물리적인 시간을 말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상대방을 향한 감정이 지속되었는가?


 물리 공식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객관적인 수치를 데이터로 나타낼 수는 없다. 또 모든 상황을 일반화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속 등장인물을 S=V×T에 대입해가며 예를 들어보려고 한다.



1부. 벚꽃 이야기

등장인물: 타카키, 아카리


타카키(왼쪽)와 아카리(오른쪽) (출처: 네이버 영화)


 긴 시간동안 천천히 속력을 내어 서로에게 다가갔다.

 타카키가 아카리를 만나러가는 기차. 잦은 연착과 긴 시간. 이것이 둘 사이를 말해주는 듯하다. 속력은 느리지만 시간이 길었다고나 할까? 왜 서서히 젖어드는 사랑 있잖나.

 그래서 상대적으로 V값은 작지만 T값이 큰 편이고 둘 사이의 S값은 매우 커다란 수치를 나타냈다.


느려도 기차다. 걷기보단 빠르지. (출처: 네이버 영화)



2부. 코스모나우트 Cosmonaut

등장인물: 타카키, 카나에


훌쩍 커버린 타카키. (출처: 네이버 영화)


카나에(왼쪽). 사심을 담아 말하자면 '잘 만든 3부작은 역시 2부가 최고' (출처: 네이버 영화)


 카나에는 순식간에 타카키에게 빠져든다. 그런데 왜 그 마음을 포기하게 되었을까?

V는 컸지만 S가 넘사벽으로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카나에는 우주 비행선이 우주로 날아가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기가 아무리 타카키를 좋아해도 이미 타카키는 저 멀리 우주에 있었다는 것을.

 2부 제목이 'Cosmonaut'(우주 비행사)다. 카나에가 느끼기에 타카키는 우주에 있는 우주 비행사였다.


시속 5킬로미터.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비행기의 속도다. (출처: 화면캡쳐)



3부. 초속 5센티미터

등장인물: 타카키, 미즈노 그리고 다시 아카리


짧게 등장한 미즈노. (출처: 화면캡쳐)


 타카키와 미즈노는 3년이나 사귀었다. 그런데 타카키에게 있어서 미즈노를 향한 마음은 V값이 짧은듯하다. 그것도 매우. 왜냐하면 타카키가 독백에서 자신은 미즈노에게 1센티미터 정도 밖에 마음이 다가가지 않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T에 3년을 넣었는데 S가 1센티미터라니. S=V×T, 대체 어떤 속력(V)으로 움직여야 3년에 1센티미터 일까?[각주:2]


 갑자기 아카리 등장! 왜 이제 나타난거니! 그래, 이제 둘이 잘 되려고 나왔구나. 그런데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로 한 아카리.



 글 앞 부분에 이런 전제를 깔았다.


거리(S)는 상대방에 대한 내 감정의 깊이를 뜻한다.

속력(V)은 얼마나 빨리 사랑에 빠져드는가, 즉 V값이 크면 정렬적인 사랑, V값이 작으면 조금씩 젖어드는 사랑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영화 제목 <초속5센티미터>는 이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시간(T)은 물리적인 시간을 말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상대방을 향한 감정이 지속되었는가?


 그런데 이것은 방향이 반대여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방향이 반대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감정이 식어가는 상황을 말한다.


 아마도 1부에서 둘의 감정값(S)은 거의 같은 지점에 도달했다고 생각된다(적어도 영화에서는 그렇게 표현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10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카리를 사랑하는 타카키의 마음은 느리게 식어갔다.[각주:3] 그리고 상대적으로 타카키를 사랑하는 아카리의 마음은 빠르게 식어갔다.

 시간 T는 (<인터스텔라>가 아닌 이상)상수常數이기 때문에 V값에 따라 S가 달라진다. 아마 아카리는 타카키보다 V가 더 컸기에 더 빨리 S가 작아질 수 있었다.


시간도 상수가 아니었나? 암튼 적어도 같은 지구에 살면 시간은 상수. (출처: 네이버 영화)


 3부에서 타카키와 아카리는 우연히 서로를 지나치는데 그 사이에 기차가 지나간다. '어디서 보았나?' 그리고 돌아보는 두 사람. 기차는 기니까 오랫동안 지나가고, 기차가 지나간 뒤 타카키는 맞은편에 아무도 없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서로를 그리워했던 시간이 다름을 의미하는 듯 하다. 타카키는 더 오랫동안 아카리를 그리워했고, 상대적으로 아카리는 타카키를 더 짧은 시간동안 그리워했다.


 참고: 뮤직비디오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3분 50초 정도부터 보면 기차 장면이 나온다.


더 오래 기다린 사람이 지는거. 아카리는 진작에 S가 0(또는 0에 가깝게) 되었다. (출처: 뮤직비디오 화면캡쳐)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큰 충격적인 부분은 3부에서 아카리의 약혼자를 본 순간이었다. 타카키와 아카리가 잘 됐으면 좋았을텐데, 이런 게 아니다. 아카리와 타카키가 서로 다른 속력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2부의 타카키와 카나에, 3부의 타카키와 미즈노 모두 서로 다른 S와 V를 가지고 있었는데, 유독 타카키와 아카리만 같은 S를 가지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결국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행동을 하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는 각자 다른 V(상대방에게 다가가거나 멀어지는 속도)와 S(감정의 크기)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영화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듯 하다.


 "내 마음과 다르다고 상처받지 말기."


 그리고 꼭 연인 사이의 사랑이 아니라도 친구 사이의 우정도 똑같이 S=V×T에 대입할 수 있다.

 왜 그런적 있지 않나? '나는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고민. 반대로 상대방은 나를 굉장히 친하게 대하는데 나는 상대방을 그저 그렇게 생각할 경우.


 연인이든 친구든 동료든 부모-자식 관계든 S=V×T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V와 T에 따라서 상대를 향한 마음의 깊이인 S가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그것이 같다면 오히려 인간이 아니라 기계 끼리의 관계가 아닐까?


아, 굽시니스트 좋아. (출처: 나무위키)



[참고]

<별의 목소리>를 S=V×T에 적용해서 <초속5센티미터>와 비교하자면, <별의 목소리> 주인공들은 정말이지 V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친구들이다. 그래서 갈래가 판타지인가?

  1. 이 영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차이에 대한 영화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영어판 영화 부제를 a chain of short stories about their distance로 달았다. 초속 5센티미터라는 은유적 표현과 다르게 주제를 직접적으로 나타냈다고 생각된다. [본문으로]
  2. 1년을 365일로 치고 3년이면 1095일. 1일은 24시간 이니까 3년 = 1095일 X 24 = 26280시간. S=VT니까 V=S/T. 값을 대입하면, 타카키가 미즈노에게 다가간 속도는 시속 1/26280cm가 됩니다. [본문으로]
  3. 그 속력은 3부 제목처럼 초속 5cm. 그 정도로 느리게 서서히 식어갔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애써 유지하느라 타카키는 조금씩 지쳐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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