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된다! 그런데 너만 된다. 넌 금수저니까. (출처: DAUM 영화)
영화 삐뚤게 보기: 노력 따윈 필요 없어
줄거리
평화의 계곡에서 국수집 아들로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포. 하지만 포는 매일 쿵푸 고수가 되는 꿈을 꾼다. '용의 전사'를 뽑는다는 소식에 포는 주위를 기웃거리다가 우그웨이 대사부로부터 '용의 전사'가 될 거라는 지목을 받는다. 마음은 기쁘지만 쿵푸의 ㅋ도 해본 적이 없는 포는 부담감으로 가득하고, 시푸 사부 및 무적의 5인방은 갑자기 나타난 포를 경계하며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그들은 착한 포의 마음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시푸 사부는 포의 놀라운 쿵푸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던 타이렁이 감옥에서 탈출하고 최강 쿵푸 비법이 적힌 '용의 문서'를 탈취하기 위해 평화의 계곡으로 달려오게 된다. 무적의 5인방 뿐 아니라 시푸 사부마저 타이렁에게 패배하고, 이제 남은 건 포 뿐이다. 과연 포는 타이렁을 무찌르고 용의 문서를 지켜낼 수 있을까? (2편, 3편 나왔잖아요. 이겨요, 이겨.) |
1. 난 이 영화가 불편해
저는 <쿵푸 팬더> 보면서 불편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서 아, 이 영화는 ‘삐딱하게 보기’ 리스트에 넣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이유는 주인공 ‘포’ 때문인데요, 간단히 요약하면 주인공이 너무 세서 그래요. 아니, 주인공이 센 게 뭐가 불만이냐고요? 그럼 조금 더 자세히 그 이유를 읊어 볼게요.
2. 무협 소설과 쿵푸 팬더
무협 소설 보면 고수 순위가 있잖아요. 그래서 도신, 검황 같은 넘사벽 캐릭터들이 있있지요. 그 아래는 자기들끼리 넘버링 해놔요, 내가 랭킹 5위임, 난 8위임 뭐 이런식으로요.
그럼 [쿵푸 팬더] 볼까요? 역시 무협 영화답게 고수 서열이 있죠. 고수라 일컬어지는 이들 중 가장 아래 있는 ‘무적의 5인방’, 이름에 ‘무적’이 들어가는데 실제로 무적은 아니라는게 함정이죠. 다음은 시푸 사부. 타이렁이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했는데 역시나 타이렁이 승리. 그래서 타이렁이 최강자에요. 왜냐하면 20년 전 타이렁을 이긴 우그웨이 대사부는 이미 신선이 되어 사라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주인공 포가 나타나요. 뚱뚱하고 무술과는 상관없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무술 센스가 엄청나요. 거기다 살이 너무 쪄서 웬만한 공격도 안 통하죠. 마침내 악당 타이렁을 물리치고 최강자로 등극합니다. 포~ ㅊㅊㅊ
이 중에서 니가 젤로 세. (출처: DAUM 영화)
3. 불편해
주인공이 최강자가 된 것이 뭐가 불만이냐고 할 수 있어요. 대부분 무협 소설이나 영화 역시 주인공이 최강자니까요.
그렇지만 아무리 포가 천재라도 오랜 시간 노력한 고수들을 한 순간에 물리치는게 말이 되나요?
‘무적의 5인방’은 재능도 있고 오랜 시간 열심히 노력도 해왔어요. 그리고 이들보다 더 큰 재능을 가진 타이렁은 감옥에 20년간 갇혀있으면서 더 강해지기까지 했죠. 이렇게 하늘을 나르고 땅을 가르는 무협 세계에서 갑자기 나타나 얼마 안 되는 기간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이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협 소설에서는 몇 가지 장치를 넣어두어요. 제가 무협 소설 매니아는 아니지만 몇 가지 생각나는 장치들 적어 볼게요.
먹기: 내공을 갑자기 늘려주는 열매, 식물, 동물(뱀 등), 동물 몸속에 품은 무엇(보통 환 모양)을 먹는다. 만나기: 절벽 아래 떨어지는 캐릭터치고 죽는 캐릭터 못 봤다. 절벽 아래에는 엄청난 고수가 숨어 산다. 거기서 무술도 배우고 또 막판에는 고수에게 내공도 받는다. 금수저: 어렸을 때부터 최강 고수에게 키워졌다. 그리고 고수는 죽을 때 주인공에게 내공을 주입하고 죽는다. 아, 죽기전에 꼭 원수를 갚으라고도 말한다. 차원이동: 우연히 어느 그림 속에 들어갔더니 ‘먹기’와 ‘만나기’가 동시에 있네? 거기서 내공을 쌓다가 100년이 지났는데 우연히 그림 밖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1달밖에 안 지났다니! 이런 인터스텔라~ |
네, 적어도 독자를 위해서 무협 소설 작가들은 이런 저런 고민을 한다고요. 처음부터 대놓고 센 주인공도 있지만 몇 권 지나가면 더 센 고수들이 척척 나오거든요.
루피는 '먹기'형이다. 하지만 루피와 친구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출처: DAUM 영화, 원피스 극장판 Z)
그런데 <쿵푸팬더>를 보면, 다른 이들이 노력한 피와 땀과 열정과 시간이 깡그리 무시되는 느낌이 들어요. 혜성처럼 나타나서 대사부에게 '니가 짱 먹을거야' 라는 계시를 받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짜 최강자로 등극하는 내용이 <쿵푸팬더> 거든요.
맹훈련! 그런데 그 시간에 딴 애들은 놀았냐? (출처: DAUM 영화)
<쿵푸팬더>야 말로 '우생학'을 기본으로 한 영화 같아요. 아, 그냥 웃자고 만든 영화가지고 뭘 그리 심각하게 보냐? 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냥 그러고 싶어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유전적으로 우수한 녀석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 그게 싫어요. 그렇다고 유전적인 부분을 무시하는건 아니예요. 하지만 우수한 혈통은 미개한 혈통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 올 수 없다는 우생학적인 관점을 반대합니다.
사실 수련을 4개월만 하고도 '초사이어인 블루' 이상의 능력을 갖춘 프리저야 말로 드래곤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가 아닐까 싶다. (출처: DAUM 영화, 드래곤볼 Z: 부활의 'F')
4. 노력
1년동안 아이들을 담임으로서 지켜보다 보면 노력과 재능에 관한 많은 일들을 목격하게 돼요. 크게 두 가지 경우인데,
첫 번째는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가 재능 있는 친구를 앞지르는 경우죠.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래요.
두 번째는 열심히 노력은 하는데 자기보다 덜 노력하는 재능있는 친구보다 뒤처지는 경우에요. 문제는 두 번째에요. 그런데 이럴 땐 1년이 아니라 10년을 봐야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나 선생님 경험담을 아이에게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자기 이야기여도 좋고 친구 이야기여도 좋아요. 그리고 제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주위를 보니까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더라고요.
5. 노오오오오오오오력
다만 걱정되는건 있어요. 바로 ‘금수저’죠. 우리 아빠가 회장님이면, 스타크래프트에서 show me the money, black sheep wall 1 누르고 시작하는거나 다름없죠. 그래놓고 노오오오오오오력이 부족하다고 질책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찌보면 이건 '신 우생학'이 아닌가 싶어요.
사실 가정과 학교에서 모두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리고 <쿵푸팬더>를 삐딱하게 본 이 글에서도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사실 '금수저' 앞에서는 이 모든 가르침이 헛된 것임을 현실 속에서 느끼기도 해요.
성공 또는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노력에서 찾을 것인가, 사회 시스템에서 찾을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주제지만 이 글 내용이 산으로 갈 것 같아서 나중에 <어네스트와 셀리스틴>(2012)에서 간단하게나마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그저 한 마디만 하고 마칠게요.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나 놓고,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 2 배리 스위쳐라는 미국 풋볼 감독이 한 말입니다.
애니메이션계의 대표 흙수저, 어네스트 & 셀레스틴 (출처: DAUM 영화)
[추가]
2016년 1월 28일: <쿵푸 팬더3>은 더 심각하네요. 2편까지 나름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시푸 사부와 무적의 5인방이 3편에서는 위기 속에서 오로지 '포'만 바라보고 있거든요. 심지어 무공의 ㅁ도 모르던 팬더들이 갑자기 강적들과 호각을 이루며 싸우는 장면은 개인적 우월성을 넘어 집단적 우월성을 나타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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