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피릿> 권위에 대한 네 가지 이야기
<스피릿> 권위에 대한 네 가지 이야기
출처: DAUM 영화
줄거리
스피릿은 말 이름이고요, 누가 지어주었는지는 몰라요ㅋ 그냥 스피릿이에요. 때는 바야흐로 북미 서부개척시대, 라고 하지만 저는 서부 점령 시대라고 부르고 싶네요. 거긴 이미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온갖 동물들이 살고 있었거든요. 어쨌든 야생마들의 우두머리 스피릿은 하루하루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인간들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그러다 아메리카 원주민 ‘리틀 크릭’과 함께 탈출하죠. 탈출한 뒤 두발로 걷는 인간 리틀 크릭과 우정도 쌓고 예쁜 말 레인과는 사랑에 빠지죠. 그런데 군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습격하면서 레인은 크게 다치고 스피릿은 그들에게 또 붙잡혀요. 그러다가 또 탈출하는데 이번엔 공사 현장을 파괴하기까지 하죠. 정말 레지스탕스계의 거두라고 할 수 있죠. 그 과정에서 스피릿은 리틀 크릭과 재회하고 다시 또 군인들에게 쫓기게 됩니다. 과연 둘의 운명은 어찌 될까요? |
*잡담: 저는 이 영화가 끝나고 굉장히 슬픈 감정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이게 해피앤딩인 것 같지만 결국 야생마도 아메리카 원주민도 점차 사라지게 되거든요.
*잡담: 대사가 거의 없는 영화에요. 스피릿 독백 역으로 멧데이먼.
*잡담: 관점에 대한 교육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요. ‘콜롬버스 항해의 진실’이었던가요? 교과서에. 아메리카 대륙은 신대륙 발견이 아니라 구대륙 침략. 인디언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
*잡담: 리틀크릭을 등에 태우고 절벽을 뛰어넘는 장면. Bryan Adams(브라이언 아담스) 부른 <You can’t take me>. 노래가 좋네요.
1. 내게 반항하는 아이
“우리애가 이제 사춘기 인가 봐요.”로 시작하는 학부모 상담이 제법 많아요. 증상은 '불러도 대답을 잘 안 해요, 뭘 시키면 짜증스런 표정을 지어요, 방문을 꼭 닫아놓기 시작했어요.' 등이죠. 이런 점에서 보면 (사춘기를 어떻게 정의 내리는 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사춘기는 슬슬 부모의 권위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서 부터인 것 같아요. 물론 학교 안이라고 다를 건 없죠. 1학년 아이들에게 담임 선생님 말은 엄청난 권위 그 자체죠. 그런데 6학년 아이들에겐 꼭 그렇지도 않죠.
이렇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저는 야생마라고 부르고 싶어요. 어린 ‘스피릿’들은 ‘나한테 왜 그래? 나한테 간섭하지 마, 난 자유롭고 싶어.’라고 외치죠.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네가 그렇게 힘세냐? 아닌 거 같은데? 그니까 나한테 간섭 좀 하지 마라’ 이거에요. 어쨌거나 이 시기는 모든 권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시기에요. 특히 이제 막 이런 생각을 가지기 시작한 아이가 느끼는 가장 가깝고도 큰 ‘타도의 대상’은 누구일까요? 아마도 부모와 교사겠죠.
그럼 스피릿처럼 권위에 맞서 싸우라고 해야 할까요? 부모와 교사로부터 맞서 싸워라! 딱 반박은 안 되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감히 내게 도전하다니! 기분이 좋지 않죠. 이럴 땐 매가 약이라던 말은 유통기한이 다 되었죠.
그래서 권위에 대해 정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조금 재미는 없겠지만 요즘 같은 탈권위 시대에는 그래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단어 중 하나가 권위라고 생각되거든요.
2. 권위 이야기
‘스피릿’이 자유를 말하는 영화인데 역설적으로 저는 권위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네요. 그런데 자유와 권위가 그렇게 반대되는 단어만은 아니에요. 한 가지씩 정리해 볼게요.
아이에게 꼭 가르쳐야할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권위는 좋은 권위와 나쁜 권위가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좋은 권위를 따른다는 것은 행복하고 자기 삶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면 해요. 예를 들면 스피릿이 이끄는 야생마 그룹이 그렇죠. 스피릿은 야생마 그룹을 이끌고 무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지도자에요. 좋은 권위는 이렇게 나를 지켜주고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권위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는, 좋은 권위는 강요되지 않는다는 것에요. 가끔 아이가 심하게 반항하면 교사로서 울컥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 이유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감히 내 권위에 도전해?'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다고 무조건 부드러운 말투로 달래라는 이야기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해요. 권위에는 엄격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있어야 하거든요. 또 여기서 엄격함은 강압적인 것과는 달라요. 엄격함과 강압적인 것을 구분했으면 좋겠어요.
세 번째는, 완벽히 좋은 권위를 가진 인간은 없단 거예요. 추가로 좋은 권위는 조금씩 만들어져 가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거죠. 부모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이가 부모를 우습게볼까요? 아니요, 그 반대에요. 오히려 아이는 부모를 더 친근하게 느끼고 이해하게 될 거에요. 저는 학기 초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내가 못하는 것을 알리고 시작해요. 그리고 잘못된 판단을 할 때도 있다고 밀 하면서 그럴 땐 내게 정중히 조언해 줄 것을 부탁하조. 여기서 핵심은 ‘난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기대 하지 마’가 아니라 ‘내가 교사로서 좋은 권위를 가지려고 노력할게, 하지만 실수할 수도 있어’에요. 아이에게 꾸준히 성장해나가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도 함께 성장할 거에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마지막, 권위는 학습된다는 거예요. 영화 초반 스피릿이 어떻게 지도자가 되었는지 살짝 언급되죠. 스피릿은 단순히 부모가 지도자라서 그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 아닐 거예요. ‘명예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스피릿의 독백이 나오듯, 스피릿은 부모가 좋은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에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거예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나쁜 권위’를 보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서 나쁜 권위를 행사해요. 때론 어떤 아빠들은 군대에서 통용되는 권위를 아이에게 적용하려고 하죠. 사실 저도 처음 교사 생활할 때 그랬었어요. 그 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져요.
3. 결국,
반항한다는 건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는 겁니다. 엄청 속상하고 화도 나겠지만 나쁘게만 보지 말았으면 해요. 오히려 바른 정체성을 튼튼하게 심어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으면 해요.
이렇게 맞는 것 같은 말을 주르륵 흘려놓았는데, 다 쓰고 나니 사실 이 글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 이었네요. 아이들이 교사인 내 권위에 도전하려 할 때,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부끄러이 여기며 또 다른 ‘나’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요. 오늘도 부끄러이 하루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