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혜부학

혜부학(20140228) 돈 끼오떼

708호 2015. 9. 20. 23:51

기발한 시골양반 라만차의 돈 끼호떼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민용태 옮김, 창비, 2012)

 

 

 400도 더 된 소설, 돈 끼호떼.

 

 1권 앞부분, 2권은 훑어가며 읽으면서,

400년 전 똘기 가득한 작가를 상상하게 되었다.

 이 책이 그 당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막 나가는 주인공과 막 나가는 이야기 그리고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작가 등을 보면서

마치 B급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만약 내가 400년 전에 스페인에서 <돈 끼호떼>를 읽었다면 돈 끼오떼 마니아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비단 <돈 끼호떼> 뿐 아니라

만화 부문 명예의 전당에 오른 <돌연변이 파워걸즈>를 포함해서 많은 B급 이야기에 흥분하고 웃고 울컥해왔다.

이에 <돈 끼호떼>를 읽으며 이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B급'에 열광하는가?

 

(글쎄. 굳이 답을 찾으려면 내가 'B급 작품' 어느 부분에서 '반응'하는지를 돌이켜보자.)

 

 

1. 조롱

 조롱하고 풍자하고 비꼬는 부분에서 웃거나 쾌감을 느꼈고

그 대상이 권위일 때, 방법이 말이든 행동이든 기발할 때 그랬다.

B급 영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볼 때 혼자 낄낄 거리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2.  패러디

 <무서운 영화> 시리즈(키넌 아이보리 웨이언즈 등)에서 시도한 그 많은 패러디들을 보면서 배를 잡고 뒹굴었던 기억.

심지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패러디를 한 원작 영화를 찾아보기도 했으니 이 상황 자체가 B급스럽다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패러디가 '1. 조롱'과 연관 지어 나온다면 더욱 환호했던 것 같다.

 

3. 이야기

 일단 막나가는 이야기 구조가 있다. 이것이 소위 '막장 드라마'와 다른 점은,

막장 드라마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이건 말이 된다고~' 외치고 있는 반면

내가 열광하는 B급들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대놓고 '이건 말이 안 되지만 대강 넘어가자고~'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돈 끼호떼>를 읽고 난 소감이나 느낌을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B급 이야기를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난 이상하게도 B급에 열광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B급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조롱, 패러디, 이야기 구조가 '우아'하게 이루어질 때 더 열광한다.

그렇다면 뭐가 우아한 것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돌연변이 파워걸즈>부터 얼마 전 부인과 함께 본 <마세티 킬즈>(로드리게즈)까지 도대체 우와한 구석이란 찾아볼 수 없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것들에게서 우아하게 느껴지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혹은 그 기준이 무엇인지 굳이 분석하고 싶지않다.

 

그런 이유로 이번 글은 여기까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