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 리뷰
스즈메의 문단속 (2023, 신카이 마코토)

*스포일러 있는 글입니다.
*사진 출처: DAUM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여전히 신카이 마코토는 빛이 났지만, 설레임은 사라졌다.
신카이 마코토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보여주었던 감독이었기에, ‘신작’ 소리만 들어도 두근거리던 설레임은 적어도 다음엔 없을 것 같다.
감독이 한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유명해진 영화는 <너의 이름은.>(2017)이다. <너의 이름은.>은 대중의 요구를 영리하게 잡아내어 만든, 말 그대로 ‘잘 만든’ 영화다. 그리고 2년 후 개봉된 <날씨의 아이>에선, 이건 좀 막 나가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결말을 보여주었다. 난 이 막나감이 좋았다. 그래서 큰 자본을 끌어서 만든 상업 영화에 대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자신감을 엿보았고, 그 자신감이 어디로 향할지 기대되었다.
그러나 <스즈메의 문단속>은 심심했고 너무 얌전했다.
1. 초라해 보여, 스즈메
마지막에 소타(남주)가 스즈메에게 자기 옷을 벗어 입혀주면서, 스즈메의 과거와 미래가 이어질 땐 어색함에 실소가 나왔다. 이 후 이어지는 과거의 스즈메를 향한 스즈메의 폭풍 설교. 신카이 마코토가 이렇게 말이 많았나?
일본 드라마에 보면 마지막화에 자기 주제를 설교하듯 길게 내뱉는 상황이 자주 보인다. 이걸 감독은 그대로 가져왔다. 마지막에 스즈메가 어린 스즈메에게 ‘나는 너의 내일이야야라고 말할 땐 손이 오그라들뻔 했다.
쏟아지는 빗소리에 말은 없어도 마음이 전달되었던 <언어의 정원>은 사라지고, 또박 또박 한 글자씩 읽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 처럼 언어를 쏟아내는 스즈메만 남았다. 그래서 스즈메 뒤에 있는 신카이 마코토는 조급해 보였고, 그 조급함을 연기하는 스즈메는 초라해보였다.
미야미즈 미츠하의 인기도 얻지 못하고, 아마노 히나의 당당함도 얻지 못한채 초라해져버린 이와토 스즈메를 보았다.
2. 일본, 일본 그리고 일본
일본색이 너무 짙다. 어느 정도면 그냥 보겠는데 너무 심하게 짙다. 일본 사람이 일본 영화 만드는데 뭔 상관이야? 맞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일본색이 짙은 영화를 욕하는게 아니다. 그냥 한국인인 내가 몰입이 잘 안되었단 거다. 지진, 무속 그리고 일본의 올드송까지 나오면서 이건 그냥 일본 로컬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도 미국 올드송이 나오는데, 그래서 좋았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걸 하나도 모르는 내 입장에선 영화 몰입에 방해만 되었던 거랑 비슷하달까.
일본 로컬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상관없지만, 전세계에 자기 영화를 보여줄 생각을 했다면 이건 지나친 자신감이거나 촌스러운 선택이라고 본다. 문화를 슬쩍 슬쩍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그 문화를 받아들이고 거부감없이 넘어갈 수 있는데, 이렇게 대놓고 이게 우리 문화다아아아 외치는건 오히려 방법의 촌스러움이 느껴진다. 개신교 길거리 전도 같은 느낌이랄까?
3. 안일한 선택
한 사람의 희생으로 다수를 살릴 수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이 질문을 던진다. 일단 이런 상황이 나오는것 부터가 안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갈등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데 뭘로하지? 아, 그거 있잖아~ 즉, 감독이 큰 고민을 했다고 생각되지 않는 지점이다.
그럼 여기에 대한 결론은? 일단 희생시켜서 큰 피해를 막고, 희생한 녀석 구하러 가기. 이게 감독이 내놓은 답안지였다. 그렇게 희생해서 요석이 된 소타를 구하러 가는게 영화의 후반부다. 그런데 이미 구하게 될거 뻔하니까 긴장감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냥 뭐 구하겠지. 그렇다고 스즈메가 대신 요석이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조급함과 안일함이 느껴졌기에 해피 엔딩으로 가는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런데 무슨 긴장.
착한척 하는 헐리우드 영화(쥬라기 공원: 폴른 킹덤,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 등)도 짜증나지만, ‘둘 다 구한다’는 영화 자체를 착하게 만드려는 것같아서 더 짜증이 났다. <날씨의 아이>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헐리우드 입장에서 보자면 다시 요석이 된 고양이도 불쌍하잖아? 아마도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요석이 된 소타를 구하고나서 뒷문으로 나가려는 괴물을 처치해 버렸을거다. 그리고 문으로 함께 나오는 스즈메와 소타 그리고 고양이. 뭐 이런 엔딩 아니었을까? 아니다, 그 전에 도교에서 이미 괴물을 없애버렸겠지.
액션씬도 눈에 띈다. 아마 본인 작품 중 가장 공들여 액션씬을 찍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오, 그럼 안일한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도전이잖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분위기를 보면 안일한 선택임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귀멸의 칼날>, <원펀맨>, <주술회전>, <진격의 거인> 등 액션을 끝내주게 뽑아낸 작품들이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치고 일본 애니 역대 흥행 수익 1위를 차지했다.
영화 속 스즈메는 거칠고 힘든 길을 가는데, 정작 감독은 너무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다.
4. 하지만 괜찮은 작품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별로냐고 묻는다면, 괜찮은 영화라고 답하고 싶다. 다만 반짝 반짝 빛이 나지 않은 그저 괜찮은 영화일 뿐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영화를 좋아했던 입장에서 아쉬움이 많아서 그렇지 볼만한 영화다.
아, 한 가지 더. 제목만은 2022년부터 2023년 3월까지 영화중에 최고라고 생각한다. 자그만치 문단속이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