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글

[칼럼] 보드게임에 대한 편견 몇 가지

708호 2017. 9. 8. 02:37

보드게임에 대한 편견 몇 가지


1. 포커와 고스톱 사이

 저는 초등학교 때 포커를 배워서 즐기곤 했어요. 동네 문방구에서 트럼프 카드(플레잉 카드)를 사서 친구들과 곧잘 했었죠. 부모님도 별로 신경 쓰지 않던 눈치였고요. 그런데 고스톱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배웠어요. 화투를 사러가면 주인에게 뭔가 이상한 눈초리를 받았던 기억도 있어요. 포커나 고스톱이나 도박으로는 도찐개찐인데 여하튼 당시 분위기는 그랬습니다.
 지금도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학교에서 플레잉 카드를 가져와서 노는 아이들은 봤어도[각주:1] 화투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네요. 아마 교실에 화투가 보이면 학부모에게 바로 전화가 갈 겁니다. 그리고 만약 교실 속 화투를 그냥 놔두면 민원이 들어오겠죠.
 대체 트럼프 카드와 화투의 차이는 뭘까요?

마술이라는 친근한 이미지 때문일까? (출처: 다음 영화)


2. 연관 생각어: 도박

 한국 보드게임의 1차 르네상스라 불리는 2000년대 초반, 여기 저기 보드게임방이 생겼죠. 그리고 얼마 후 보드게임방에서 도박을 일삼는다는 뉴스도 여기 저기 나왔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보드게임 = 도박 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많더라고요. 칙칙하고 어둡고 담배냄새에 달그락 소리와 욕지거리가 새어나오는 은밀한 곳. 그래도 요즘은 인식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보드게임에는 도박이라는 '연관 생각어'가 붙어 있네요. 덕분에 그 재미있는 <티츄>를 교실에서 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색안경을 쓰고 보면 <가위바위보>도 도박성 짙은 게임이지요. (<카이지>, 출처: 다음 영화)


3. 유치해

 보드게임이 취미라고 하면 '아직도 그런 거 해?'라는 답변이 들려오곤 합니다. 좋게 표현해서 키덜트라고 해주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보드게임이 키덜트의 영역 안에 들어있다는 게 불만이에요. 아이들을 위한 보드게임도 있지만, <쓰루 디 에이지스>나 <갤러리스트>같은 게임은 아이들 보다는 오히려 성인을 타깃으로 하고 있어요. 또 <루미큐브> 같은 게임은 방법이 쉬워서 아이들도 할 수 있지만 세계 대회가 있을만큼 성인들도 좋아하는 게임이에요. 이렇게 애나 어른이나 머리를 끙끙 싸매야 하는 게임은 많아요.
 그런데도 교실에서 보드게임을 한다고 하면 고학년 학부모 중에는 '애가 몇 살인데 그런걸 하냐'며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세요.

애나 어른이나 어려운 게임 중 하나: 쥬만지 (출처: 다음 영화)


4. 편견이 무서워.

 <화투>가 <플레잉 카드>보다 인식이 좋지 않은 이유는 명절이면 집에서 흔히 보는 도박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어른들' 주변에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대부분 화투 때문이어 그럴수도 있어요. 반면 <플레잉 카드>는 마술로 친숙하기도 하고 '원카드' 등 굳이 돈을 걸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있기 때문에 <화투>보다는 괜찮다고 생각될 수 있죠.

심지어 플레잉 카드는 아이들을 위한 <원카드> 전용으로 나오기도 한다. (출처: 다이브다이스)


 이렇게 편견은 경험을 토대로 쌓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럴듯 해 보이기도 해요. 그러나 편견이 무서운 건 차별로 이어지기 때문이겠죠.

 보드게임이란 취미를 '도박'이나 '유치함'이란 편견으로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독서나 영화 감상 같은 취미도 있는데 그게 뭐냐고 이상하게 바라보지 말아달란 거죠.  그렇다고 편견과 차별을 넘어 바른 민주시민의 자세로 건전한 취미 생활을 이해하고 존중해 달라는 거창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저 보드게임은 가족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 뿐이랍니다. 밥상머리 교육처럼 보드게임 탁자머리에서도 가족과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는 거죠 :-)


뭐. 이런 정도는 아니라도. (출처: 보드게임긱)

  1. 물론 포커를 하진 않죠. 그냥 원카드 정도입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