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이야기: 세탁기, 냉장고

708호 2016. 4. 13. 00:32

가구 이야기: 세탁기, 냉장고



세탁기
 건조를 시키고 세탁기 문을 여니 따뜻한 기운이 몰려왔다. 그 온기에 기분이 좋아 한참이나 세탁기 문을 열어놓고 쭈그려 앉아있었다. 그러다 불쏘시개나 되는 냥 옷가지들을 꺼내 꼭 껴안고 목에 두르고 손에 말고 있노라니 웃음이 씨익 나왔다. 온기가 사그라들 때 쯤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를 나왔다. 그러고 보니 추운 곳에서 홀로 지내는 세탁기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
 냉장고는 차가웁다. 냉장고 안이 그런 것도 있지만 옆에 누가 기대앉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하기사 생각해보면 당연할거다. 누군가 기대 있으면 균형이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그렁그르렁 소리를 낸다. 균형을 맞춰주고 우두커니 냉장고를 바라보니 참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사실 냉장고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 자기에게 기대면 안 되는 것을 아니까 자꾸만 밀어내는가 생각이 든다. 


 추운 곳에서 뜨뜬한 열을 내는 세탁기와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기운을 내는 냉장고. 둘 다 참 외롭겠구나 싶었다. 그래서인지 둘을 서로 붙여 놓고 싶어졌다. 왠지 서로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 그런데 세탁기는 베란다에서 나올 수가 없다. 그렇다고 냉장고를 베란다로 보내자니 장소가 너무 비좁다. 어찌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둘을 베란다 창 하나 사이에 두고 나란히 놓아보았다. 서로 싫지는 않아 보인다. 손을 잡지는 못하지만, 가끔이라도 두런두런 이야기는 나누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