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혜화, 동
(20110220 작성)
혜화, 동 (민용근 감독, 2011)
: 나를 안아 주세요.
이 영화는 혜화와 한수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혜화와 혜화의 이야기일 뿐이다.
5년 전 아픔에 마음 시려하는 혜화는 누군가에게 쉽사리 말을 건네기도,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기도 어려워한다. 그래서 영화 속 혜화는 말도 매우 적고 표정의 변화도 적다. 이런 혜화에게 또 다른 혜화는 사랑이 그리워, 누군가 자신을 따스하게 안아달라고 말하라 종용한다. 표면에 보이는 혜화는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모두 닫아 버리지만, 수면 아래 숨어있는 혜화는 누군가의 배려와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채 잠든 어머니의 팔을 들어 자신의 몸을 안아주도록 하는 장면이야말로 혜화가 외치는 커다란 울림과 다름없다.
이렇듯 혜화와 혜화는 갈등하고, 결국 누군가에게 안기기보다는 누군가를 안아주는 것으로 서로 합의한다. 다만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닌 (아마도 유기견일 것으로 보이는) 개(犬)라는 것, 보살핌과 배려를 받아야 하는 개라는 것, 배신하지 않는 개라는 것.
또한 혜화와 혜화의 갈등을 극명하게 표현한 장면이 있는데, 바로 결혼한다는 수의사의 말에 대해 혜화가 대답하는 장면이다. 수의사는 아내와 사별했고 여섯 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다. 이 동물병원에서 3년 동한 일한 혜화. 영화는 내내 혜화와 수의사의 관계가 발전할 것 같은 분위기를 묘하게 흘린다. 그렇지만 수의사는 예전 여자친구와 결혼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을 혜화에게 하고, 그 순간 혜화는 정색하며 ‘왜 나는 아닌 가요?’라고 묻는다. 당황하는 수의사에게 또 다른 혜화는 ‘놀래 키려고 그랬어요. 농담이에요’라고 말한다.
혜화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혜화의 가슴을 만지고 싶어 하는 여섯 살짜리 수의사의 아들을 혜화는 안아주고 재워준다. 아마도 혜화는 이 아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을 테고 자연스럽게 수의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열어가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혜화와 혜화는 점차 하나가 되어가며 치유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의사의 결혼 발표로 인해 혜화는 다시, 어쩌면 예전보다 더 굳게 마음을 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혜화에게 한수가 나타난다. 5년 전, 헤헤 웃던 혜화를 두 개의 자아로 나눠놓은 배신의 주체, 한수. 그런데 이 한수라는 녀석은 영화에 등장할 때부터 남다르다. 한 마디로 지질하다. 이등병인데 전역마크를 오바로크를 하더니만 절뚝거리며 걸어간다. 아, 의가사 제대구나라고 추측해본다. 그렇게 집에 와서 피아노를 치는데 그것도 어설프다. 그런데 알고보니 고등학교 때까지 피아노를 치던 녀석이었다. 그리고는 아들을 찾는다고 교수집을 어슬렁거리고 거짓말도 어설프게 한다. 거기다가 젊은 녀석이 교수한테도 엎어지며 팔이 꺾이는 수모를 당한다. 나름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데 지질함은 가시지 않는다. 정신도 조금 이상하다. 혜화가 혼자 사는 집 창문을 열고 들어와 혜화 침대에서 자연스럽게 잠을 자기도 한다. 어처구니없고 지질하며 뭔가 왜곡되어 있는 녀석이 한수다.
영화 마지막, 백미러로 보이는 한수에게 혜화가 후진기어를 넣은 것은 5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닐 것이다. 혜화와 혜화가 갈등하며 서로 합의 본 것이 무엇인지 상기해 보자. 바로 개를 안아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혜화는 백미러에 절뚝이는 한수가 바로 개와 다름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어처구니없고 지질하며 뭔가 왜곡되어 있는 한수를 돌보아 주고 배려해야할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한수를 대신해 자신이 납치범이 되려고 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한수는 지질한 녀석이지만 ‘너에겐 이것 밖에 해줄 것이 없잖아’ 라며 다시는 배신하지 않을 분위기를 물씬 풍기기도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이 영화는 혜화와 한수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오직 혜화의 이야기일 뿐이다. 감독은 얼어붙은 혜화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며 결국 한수와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 것을 영화의 줄거리로 잡아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개로 분열된 혜화가 그렇게 쉽게 합쳐질까? 혜화가 그렇게 평면적인 인물이었던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면 영화의 결말은 그렇게 달달한 러브스토리 해피엔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혜화가 제자리걸음을 한 것도 아닐 것이다. 혜화가 후진기어를 넣은 행위는 넘치기까진 아니더라도 일말의 희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혜화가 그녀와 접촉하는 ‘외부’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5년 전 배신을 당하고, 혜화는 가족처럼 지내던 누런 개 '혜수'와 그 새끼들을 분양시킨다. 마음을 줄 수 있던 어떤 것도 용납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3년 전 부터는 동물병원에서 일하게 된다. 외부와 접촉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3년 전 부터인지 언제 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에서 개들을 키우기 시작한다. 개장수에게 잡혀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개들을 잡아다 키우려고도 한다. 위에서 얘기했던 두 혜화의 합의점인 것이다. 더불어 수의사 아들에게도 마음을 써준다. 살아있다면 딸과 나이가 같았을 수의사 아들 말이다. 여기까지가 <혜화, 동> 영화의 시작 전 혜화의 상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개와 더불어 한수까지도 ‘키우려’고 한다. 마치 유기견을 데려오듯 서서히 백미러에 보이는 한수에게 후진하며 접근하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혜화는 개에서 아이(수의사 아들) 그리고 성인 남성까지 돌봄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혜화는 ‘나를 안아줘’라고 외치지 못하고, 아직 또 다른 혜화와 하나가 되지 못한 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혜화는 '안아줘‘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은,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혜화가 치유되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혜화와 혜화의 이야기인 것이다.
어쩌면, '나'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그렇게 혜화는 조금씩 움직인다.
*모든 사진은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